[iZE] S.E.S.와 SM의 재회
S.E.S.의 [Remember]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S.E.S.의 재결합 앨범? ‘재결합’은 ‘재결성’ 대신 조심스럽게 선택된 단어일 것이다. 그것은 향후 지속적인 그룹 활동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리메이크나 기념공연 차원은 넘어서는, 새로운 음악과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뜻한다. 이 감각 안에서 [Remember]는 S.E.S.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앨범이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 이른바 걸 그룹의 역사에서 S.E.S.의 많은 것이 최초다. 당연히 14년 만의 새 앨범도,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도 처음이다. 사실 앞으로 이런 경우가 또 있을 지조차 모르겠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는 무엇을 만났을까?
우리가 보통 기대할 수 있는 것은 ‘Love [story]’ 정도에 그친다. 유영진의 걸작이라고 해도 좋을 ‘Love’와 데뷔 곡 ‘I’m Your Girl’의 매쉬업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그 배경에 비하여 인상적이지 않다. 90년대 사운드의 재현은 의도와 무성의 사이에 걸쳐 들린다. 이들의 히트곡 제목을 이용하는 랩 파트는 1회성 이벤트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뮤직비디오는 전성기의 활동 클립부터 최근 모습까지를 이어 붙인다. 과거를 회상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충분할 수도 있다. 운이 나빴다면 최초의 기획은 그 정도였을 지도 모른다. 이는 앞으로 다른 팀을 통하여 실제로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Love [story]’는 S.E.S.의 ‘컴백’을 진지하게 가정한 것처럼 보이는 단계적인 접근의 시작처럼 보인다. 12월에는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리얼리티 쇼가 공개되었다. 이들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콘텐츠이지만, 동시에 구전과 오래된 자료로 알려졌던 1세대 아이돌의 역사를 공식화하는 과정이 되었다. 앨범 준비 과정의 공개는 요즘 익숙한 것이지만, 세 멤버가 해체 이후로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20주년을 맞아 재결합을 논의하며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을 밝힌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앨범 발매 직전 복귀를 알리는 팝 발라드 ‘Remember’가 공개되고, 앨범과 함께 댄스 넘버 ‘한 폭의 그림(Paradise)’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두 노래 모두 오랜만의 복귀에 대한 소회를 어떤 식으로든 담아내지만, ‘한 폭의 그림(Paradise)’에 이르면 음악과 가사, 비주얼 모든 면에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희석된다.
꼭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뿐일 지도 모른다면, 과거의 명곡을 되살리는 것도, 과거 걸 그룹의 느낌을 간직한 14년 만의 점잖은 신곡을 내는 것도, 심지어 걸 그룹으로서 매끈한 신곡을 만드는 것도, 할 수 있다면 모두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대신 그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지금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그런 고민을 현실화시키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집단 중 하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 ‘일’의 출발점이었던 역사에 대한 존중과 이해, 배려와 보답이다. S.E.S.의 ‘재결합’이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SM은 S.E.S.가 없던 지난 10여 년 동안 쌓아온, 과거에는 없던 역량과 자원을 동원한다.
소프트한 효과를 넣은 앨범커버 사진은 걸 그룹으로서 S.E.S.라는 존재의 출발점에 대한 강력한 상징이다. 하지만 그 디자인은 최근 SM의 커버작업 스타일 안에 둔다. 팀 로고도 타이포에서 출발하여 조형을 만드는 현재의 방식으로 새로 만든다. 과거 S.E.S.는 ‘Dreams Come True’를 리메이크 하기 위해 이수만 프로듀서가 직접 핀란드 작곡가를 찾아가야 했다. 이제 SM은 작곡 캠프를 통하여 전 세계에서 곡을 수집하고 그중 자신들의 기획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고른다. 리얼리티 쇼에서 이수만 ‘프로듀서’는 ‘Dreams Come True’의 원작자를 SM 주관 행사에서 다시 만난 에피소드를 직접 말한다. 유영진은 과거 음정을 보정할 방법이 없던 시절과 한 그룹이라 할지라도 개별적으로 녹음을 진행하는 현재를 비교한다. 이 모든 차이점은 당연히 [Remember]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신곡의 가사가 지나치게 스페셜 앨범의 목적을 의식하는 것은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약점이다. 하지만 앨범 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트랙이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My Rainbow(친구-세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곡은 잘 갖추어진 시스템 안에서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요컨대 과거 컴백 일자를 정해놓고 몰아치듯 앨범을 만들었던 이들은, 4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에도 그에 적합한 기획과 A&R, 홍보와 비주얼 작업, 공연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웹툰 이후로 ‘할 수 있으니까 한다’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SM은 할 수 있으니까 했다. 할 수 있으니까 한다는 것이 사실 이렇게 멋진 거다.
글 | 서성덕(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