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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히트곡 DVD 앨범 만든 가수 바다 & 아버지 최세월

가수 바다가 아버지의 46년 가수 인생을 정리한 DVD 음반을 만들어 화제다. 고속도로 휴게소 트로트 가수인 최세월씨는 딸 덕분에 ‘얼굴 없는 가수’에서 벗어났다. 아버지 덕분에 가수가 됐다는 딸과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줘 고맙다는 아름다운 부녀지간을 만났다.

 

[2008년 05월호] 레이디경향.jpg


46년간의 음악 인생 정리한 DVD
“내가 우리 성희(바다의 본명) 기사는 거의 다 봐요. 인터넷 기사는 물론이고 잡지도 사서 보거든요. 기사 예쁘게 잘 써주세요.”

 

바다의 아버지 최세월씨(60)가 기자를 보자마자 건넨 말이다. 환갑의 아버지는 유명 가수인 딸과 함께하는 인터뷰가 많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혹여 당신으로 인해 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잡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바다(29)가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들려주겠다며 나선다. 최근 바다는 한 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길을 가다 딸의 모습이 있는 잡지를 발견한 아버지는 서점에 가서 ‘저기 저거, 바다 있는 거 주세요’라고 했다. 외모도 심상찮은 나이 많은 아저씨가 ‘바다’를 찾는 게 이상했던지, 서점 직원은 손을 덜덜 떨면서 잡지를 주었다고 한다. 가만히 딸의 이야기를 듣던 최세월씨는 “내가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지”라며 “젊었을 때도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나를 무척 무서워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아버지가 웃지 않으시면 무서워 보이세요. 그런데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지 몰라요.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제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이셨어요. 일단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공부 스트레스가 없어지니까요. 아버지는 늘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고, 애정 표현을 잘하셨어요.”

 

바다의 아버지 최세월씨는 고속도로 휴게소 트로트 가수다. 지난 46년간 총 7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지금까지 총 4백만 장의 앨범을 판매했다. 특히 지난 1999년 발매한 앨범 ‘왕타령’은 무려 1백만 장 이상이 팔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음반 판매량은 누가 더 앞서느냐고 묻자 최세월씨는 “내가 낫죠. 우리 세대는 다운로드를 못하니까 무조건 테이프 사야 하거든요”라며 웃었다.

 

이번에 내놓은 DVD는 최세월씨의 지난 46년간의 음악 인생을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DVD 앨범에는 그동안의 히트곡 18곡과 ‘영원한 내 당신’ ‘내 잘못이야’ ‘세월’ 등 6곡의 신곡이 수록됐다. 그중 ‘영원한 내 당신’은 무명 가수의 아내로 고생만 해온 아내를 위해 바치는 노래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첫 번째 DVD 앨범이에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번 DVD에는 바다의 어머니 조복순씨도 참여했다.


“DVD 앨범 사진의 모델로 나서서 딱 한 컷 찍었는데 너무 쑥스러워서 더는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엄마 친구 분이 모델을 하셨어요. 대신 엄마는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하셨죠. 아버지와 엄마 친구 분의 옷을 모두 입혀주셨거든요.”

 

[2008년 05월호] 레이디경향 (1).jpg


하늘이 내린 가수, 바다
최세월씨는 바다가 여렸을 때부터 천부적인 목소리를 타고났음을 알았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는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부터 호흡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7~8년 동안 아버지는 매일 아침, 맨발로 제 배 위에 올라가셨어요. ‘배에 힘 줘’라고 말씀하시곤 제 배 위에 서시는 거예요. 아무리 아버지가 마른 체형이라 해도 성인이고 남자인데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화도 못 내고 너무 힘들었어요. ‘도대체 무얼 가르쳐주시려는 걸까’ 하고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중학교 시절, 바다는 경기도의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모인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 웅변 학원 한번 다니지 않은 바다가 1등을 한 건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 성희가 예능 쪽으로는 재능을 타고났어요. 그걸 알지만 성희가 가수가 되는 걸 100% 찬성한 건 아니에요.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가수가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재능만으로는 안 돼요. 죽도록 노력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거든요. 게다가 성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고요.”

 

바다는 안양예고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때만 해도 경기도 시흥의 소래포구에서 안양예고를 들어가는 건 시골 출신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이었다. 최세월은 1등을 하면 안양예고 입학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당시 안양예고 경쟁률이 19:1이었어요. 그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기도 힘든데, 전 합격생 68명 중에서 1등을 해야 했어요. 다행히 실기 1등으로 안양예고에 들어갔죠. 아버지는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도 ‘1등 입학’을 말씀하셨어요. 그때도 실기는 1등을 차지했는데, 그러고 보면 제가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바다는 춤추고 노래하는 게 참 좋았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다가 학교 가는 버스를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속옷을 짜면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그렇게 춤과 노래에 미쳐 땀을 쏟았다. 춤과 노래는 그에게 운명이었다.


음악의 모티브는 바로 아버지
바다는 어릴 적 늘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아버지의 노래였다. 바다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힘겨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시 아버지는 위와 폐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어요. 그런 아픈 몸을 이끌고 밤무대를 다니셨어요. 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신 적도 있어요. 그렇게 번 돈을 쏟아 부어도 제 학비로는 모자랐어요. 중·고등학교 6년이 제 삶의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바다는 아직도 그즈음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밤이었다. 밤무대에서도 국악을 하던 아버지는 코트 안에 한복을 입은 차림으로 나설 채비를 했다. 짚신을 신던 아버지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은 “오늘은 진짜 가기 싫다”는 말. 바다는 그날, 아버지가 아닌 한 남자의 인생이 가엾어서 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인터뷰 중 눈물을 흘렸다.

 

“전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살아계시고, 또 ‘고속도로 4대 천왕’도 되셔서 정말 좋아요(웃음). 노래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시고 DVD 앨범을 내신 것도 자랑스럽고요.”

 

바다는 늘 음악의 모티브는 아버지라고 말한다. 또래 가수들 가운데서 바다가 자신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그에게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이다. 

 

“성희는 내 끼를 다 물려받았어요. 이제는 성희도 가수로서 때가 된 것 같아요.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추수도 해야 돼요. 꽃이 지기 직전에 향내가 가장 짙은 법이죠.”

 

바다는 어릴 적부터 돈을 받고 노래했다. 돈이 아니면 고구마 하나라도 받은 뒤 노래를 했다. 아버지께서 ‘돈을 받고 노래해야 프로’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돈을 받고 노래하는 프로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돈을 안 받고 하면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고요. 또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마추어고,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프로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목적을 갖고 노래해야 혼이 실린다고 말이에요.”

 

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최세월씨는 프로의 조건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바로 책임감이다. 그는 딸에게 “가수가 음반을 발표할 때 무조건 빨리 취입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습한 뒤 취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세월씨는 지금 막내딸에게 줄 악보를 하나 준비 중이다. 젊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인생가다. 창 같은 노래인데 그걸 현대 음악으로 만들어 바다에게 주고 싶은 것. ‘아리랑’처럼 후손들이 영원히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딸이 불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2008년 05월호] 레이디경향 (2).jpg


참사랑 베푸는 아버지와 딸
바다는 그 흔한 차 한 대가 없다. 그의 아버지 역시 차가 없다. 집도 전셋집이다. 그동안 번 돈은 모두 어려운 이를 돕는 데 썼다.

 

“사실 얼마 전에 차를 한 대 사려고 계약서까지 썼는데 취소했어요. 아버지가 반대하셨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네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가 되면 그때 차를 사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그런 갑부가 될 수 있겠어요.(웃음) 아버지는 제가 집 사시라고 돈을 드려도 전부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세요. 아버지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너무 잘 아시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거래요.”

 

최세월씨는 음반 회사에서 돈을 줘도 돕고 싶은 사람의 계좌번호를 적어주고 그쪽으로 넣으라고 한다. 딸이 준 돈은 천원짜리로 바꿔서 갖고 다니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딸이 맛있는 거 사 드시라며 준 카드는 사람들에게 밥을 사는 데 쓴다. 그는 바다가 준 카드로 사람들에게 밥을 사면서 ‘우리 바다가 사주는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바다와 내가 번 돈의 99%는 정말이지 생각지 않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돈이란 게 나를 위해 버는 게 아니에요. 남을 위해 버는 것이죠. 그건 남에게 베푼 사람만이 알아요. 나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도와주는 게 ‘참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거저것 따지다 보면 이 세상에 도울 사람 하나도 없을걸요. 무조건 돕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불쌍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베풀면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오는 걸 느껴요.”

 

바다가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것도 모두 아버지의 영향이다. 

 

“아버지와 함께 한마음문화예술단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공연을 하죠. 초등학교 때부터 거기서 노래를 불렀고 중학교 때 정식회원이 됐어요. S.E.S. 5집 활동을 할 때는 아버지를 따라 탑골공원에 가서 노래한 적도 있어요. 저는 아버지와 함께 그렇게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이제는 익숙해질 만하건만 최세월씨는 아직도 바다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보면 그렇게 대견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준 딸이 고마운 것이다. 아버지 덕분에 가수가 될 수 있었다는 딸과 딸이 가수가 돼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아버지. 서로를 위하는 부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글 김민정 기자 I 사진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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