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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호] 여성중앙.JPG


가수 바다와 트로트 가수인 아빠 최세월씨의 아름다운 동행
지독한 가난속에서도 희망 잃지 않았던 붕어빵 부녀의 리얼라이프

 

그녀를 보는 것과 아는 것엔 차이가 있다. 화려한 여가수 뒤의 남모를 아픔,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속 깊은 그녀에게 금세 매료되고 만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더 치열하게 살았던 바다와 아빠 최세월씨 부녀의 첫 인터뷰.

 

사람들은 흔히 ‘초심(....)’을 잃지않는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대다수 연예인들이 톱 스타가 되면 순수했던 시절, 배고팠던 시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기 댄스 그룹 S.E.S.로 데뷔해 국민 요정으로 등극했고, MC와 뮤지컬 배우의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 들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리매김한 가수 바다. 그녀가 인상적이었던 건 초심을 가슴속에 오롯이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야간업소 다니는 아버지보며 눈물 훔쳤던 날, 더 치열하게 살기로 결심

“아빠하고 같이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에요. 기자님께 신세 좀 질게요(웃음).” 그녀는 얼마 전‘고속도로 4대 천왕’최세월 (본명 최장봉.60)로 46년을 살아온 아버지의 첫 DVD 앨범을 제작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던 것. 덕분에 ‘얼굴 없는 가수’ ‘길거리 가수’로 불리는 비주류 음악인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노인 양반들이 고속도로에서 꾸준히 메들리 테이프 사주는 거에 만족하며 살아왔는데…. 이게 제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네요.” 이번 DVD 앨범에는 ‘내 잘못이야’ ‘영원한 내 당신’ ‘정 들었네’등 총 6곡의 신곡과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의 히트곡 18곡이 수록됐다.최씨는 지금까지 트로트 앨범 6장을 발표 했으며 총 4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고속도로 가수치고는 그럭저럭 성공한 셈 이다. 그러나 바다가 데뷔한 지 10년이 넘는 동안 가족사를 속 시원히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아버지는 “내가 바다 아버지입니다”하고 나서기가 어려웠다. “

 

중학교 때 아빠 사업이 부도나면서 집안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그때부터 조립식 집에서 살게 됐어요. 엄마는 탕약 달이는 일을 했고, 아빠는 야간 업소에서 밤무대 행사를 뛰면서 제 학비를 마련했죠. 가난 때문에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지, 아빠는 혹시라도 가족사가 드러 나서 제 인기가 떨어지면 어쩌나, 제가 마음고생 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전 아빠의 존재나 가난했던 그 절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는데 말이에요(웃음).”

 

물론 사춘기 시절, 가난이라는 것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와 폐에 구멍이 뚫려 식사도 제대로 못했고, 조금만 피곤해도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일쑤였다.

 

“아빠는 밤무대에서 국악 공연을 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니까 안에다 한복을 입고 겉에 양복을 입으셨죠. 겉옷을 벗으면 바로 무대 의상이 되는 거예요. 중학교 여름이었 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비가 많이 내렸어요. 아빠가 신을 신고 마당을 나서면서 ‘오늘은 정말 가기 싫다’고 한숨을 푹 내쉬는데 화장실 뒤에 숨어서 그 뒷모습을 보며 한참 동안 울었어요.”

 

옛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 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고, 옆에 있던 아빠의 눈시울도 촉촉이 젖었다. 야간 업소와 지방 행사장을 뛰어다녀도 삼 남매의 학비 마련하기가 빠듯했다. 지역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학비를 마련한 적도 있었다. 안양예고 연극영화과에 입학 후,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개인 지도를 받는 친구들이 수두룩했지만 그녀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지만 오히려 주변 환경은 풍요로웠어요. 농어촌 지역이라 바닷가, 복숭아와 포도밭이 있는 과수원 근처의 조립식 집에 살았거든요. 겨울이 되면 칼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안에서 지칠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요. 속옷을 짜면 물이 줄줄 흘렀죠. 가난하긴 했지만 가수가 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던 시절이었어요.”

 

스스로 쐐기를 박아야 했다. 절실하지 않으면 상황 탓만 할 게 뻔했으니까. 아버지는 그런 막내딸에게 늘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 “자식은 빚쟁이라고 하던데 이 녀석은 저 세상에서 빚을 지고 이번에 갚으러 왔나 봐요.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바르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 하하.”


고구마라도 얻어 먹고 노래를 부르라던 아빠의 당부

세 남매 중 막내딸인 바다는 집안에서‘신기 록 소녀’였다. 학원 한 번 보낸 적 없는데도 큰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휩쓸었다. “중학교 때 바다가 웅변대회를 나갔어요. 경기도 48개 시의 학교 학생들이 출전한 대회였 는데 본선까지 진출했고, 경기도 대회에서 1을 했어요. 그때 받은 트로피와 깃발을 들고 수원시교육청으로 갔죠. 장학사가 수원시 대표가 경기도 대회에서 1등 한 건 바다가 처음 이라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딸이 자랑스럽던 지…. 하하.” 최씨는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낭랑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막내를 유독 예뻐했다. 당신의 어렸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흡족했던 것.

 

“어릴 때 동네에서 노래하면 아줌마나 할머니 들이 돈을 줘서 과자를 사 먹었어요. 어느 날 아빠가 프로의 자세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요, 프로 가수는 돈을 받고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꼭 고구마라도 얻어먹으라고 하더라고 요. 또 프로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를 불러 주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 그녀에게 아버지의 충고와 조언은 인생의 가이드북과 같았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라는 안양예고를 간다고 했을때도 아버지 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최고가 될 자신이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을 뿐이다.

 

“아빠한테 1등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입학할 때 경쟁률이 19:1이었는데 실기 1등으로 들어갔어요. 아빠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아빠는 딸에게 가급적 칭찬을 아꼈다.

 

가수가 되겠다는 딸에게‘안양예고에 입학한 뒤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입학 후에는‘대학에 들어가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자만하게 되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까봐 최씨는 한 템포 천천히 딸을 독려했던 것.

 

“고등학교 졸업하고 SM회사 오디션에 합격 했어요. 음반 나올 때까지 아빠한테 일부러 얘기 안 했어요.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음반이 나올 무렵,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실기 1등으로 합격 했고 그제서야 모두 말씀드렸어요. 그땐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딸이 최고 인기를 누리며 S.E.S. 멤버로 활동하 는 동안 꼼꼼히 모니터링했던 최씨. 그는 매일 밤 무대 의상이 안 어울렸다느니, 오늘은 노래 를 성의 없이 불렀다느니 냉철한 지적과 칭찬을 하며 딸을 격려했다. “S.E.S.로 활동할 때 아빠랑 평화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수녀님이 딸을 세 글자로 표현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아빠는 망설임 없이 ‘우리 아이는 돌아이입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수녀님은 당황하셨겠지만, 전 아빠한테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정확하게 저를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죠.”

 

“‘돌아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우주에 간 이소연씨도 같은 부류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걸 해내는 사람,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걸 해내는 사람말이에요.” 최씨는 딸에게 스타가 아닌 아티스트가 돼라 고 당부했다. 가수라는 직업과 연기 공부한 경험을 살려 뮤지컬에 도전한 것도 아버지의 바로 그 당부 때문. 그녀는 얼마 전 뮤지컬‘노 트르담 드 파리’에서 여자 주인공 에스메랄다 역을 맡아 열연했고, 이후 ‘뮤지컬 퀸’으로 가 창력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덕분에 요즘은 ‘햄릿’‘로미오와 줄리엣’‘클레오파트라’등 대작 뮤지컬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중.

 

“어렸을 때 성당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매일 밤마다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연습했는데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도 마찬가지예요. 성당 앞에서 춤을 추잖아요. 역 시 허투루 산 건 아닌가 봐요. 그때 이미 에스 메랄다 연습을 했으니 말이에요(웃음).” 그녀는 에스메랄다가 되기 위해 3차례나 오디션을 보고 파리로 공부를 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얻은 귀한 기회라 아버지는 딸이 대견하기만 하다.


가난했던 시절 기억하며 나눠주는 삶, 폼나게 살다 가고 싶다 

어릴 때부터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그녀는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가수와 뮤지컬은 그렇게 운명처럼 그녀의 삶을 파고 들었다.

 

“S.E.S. 활동 중단하고 솔로로 활동하면서 계약금을 6억원 정도 받았어요. 좋은 집을 사라고 아빠한테 드렸죠. 그런데 아빠는 작은 집을 전 세로 계약하고 나머지는 좋은 일에 쓰셨더라 고요(웃음).” 어차피 아버지께 드리기로 마음먹었던 돈이 기는 하지만 딸의 마음을 외면한 것 같아 섭섭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보며 희망을 나눠 주며 살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초심을 되새겼기 때문이다. 결식 아동 과 소년.소녀 가장, 독거 노인 등 최씨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매일 아침, 만원짜리를 천원짜리 지폐로 바꾸는 것으 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최씨.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만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매일 밤 빈 주머니로 집에 돌아온다. “차를 사려고 했는데 아빠가 말리시더라고요. 매니저 차 타고 다니고, 그 돈으로는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고요.”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씩 탑골공원에서 정기 공연을 하는 ‘한마음누리예술단’의 회원이다. 단장인 최씨는 20년째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어 왔다. 인기에 연연하 기보다 관객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진실한 가수, 진실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

 

“우리 아빠, 너무 멋지지 않아요? 아빠는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분이 아니에요. 아빠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는 게 많아요 (웃음).” 순수한 열정, 꾀부리지 않는 우직한 노력, 어려움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긍정의 힘! 부녀는 닮은 점이 참으로 많았다.

 

취재_민은실 기자 사진_임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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